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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조양 | Posted by 조양이오 2010/06/16 14:17

[컨설턴트] 이 구조, 어쩔 수 없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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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 / 임성순 / 은행나무



구조조정


진정한
구조는 결코 조정되지는 않는다. 사라지는 건 늘 구조의 구성원들뿐이다.(p.23)

IMF와 세계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있다면 아마 ‘구조조정’이 아닐까.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어려운 말로, ‘명예퇴직’처럼 있어 보이는 말로 치장해봤자 그 말은 ‘잘림’과 동의어이다. 잘린다는 것은 직장이라는 구조에서 자신이 조정되었다는 것이다. 조정은 바로 해고이고, 해고는 바로 죽음이다. 물론 방송에서는 명예퇴직을 하고도 희망을 품고 식당을 해서 ‘대박’집의 신화를 이룬 이들을 비춘다. 귀농을 해서 새로운 농법으로 돈다발을 수확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을 용케도 찾아낸다. 하지만 그에 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자살 기사가 줄을 이었는가. 아이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가장, 등록금이 없어서 어린 아이를 유괴한 부자지간, 역전과 공원에는 계속 늘어만 가는 노숙자의 행렬. 그렇게 조정을 해도 구조는 결코 조정되지는 않는다. 사라지는 건 늘 구조의 구성원들, 사람들뿐이다.

 

회사

“요샌 다들 자기가 어디서 누굴 위해 일하는지도 모른다니까.”(p.10)

주인공이 다니는 회사는 작은 외국계 리서치 회사다. 하지만 주인공은 뉴욕지사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근무를 하고 일주일에 딱 하루 사무실로 출근을 한다. 주인공이 하는 일은 바로 컨설턴팅이다. 구조조정 대상에 대한 조정의 시나리오를 써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조정’은 ‘죽음’이다. 어느 누구도, 사법기관도 모르게 살인을 한다. 아무도 살인으로 알아차릴 수 없는 살인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고 또는 자살로 된다. 다들 납득할 만한 죽음이기에 납득하고, 그의 불행을 진심으로 슬퍼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잠든 가족의 이마에 키스를 하며 자신이 그와 같은 불행을 겪지 않음에 감사함을 느낄 것이다. 죽음조차도 하나의 서비스 상품일 뿐이다. 죽음을 비극적이고 현실적인 동시에 모두가 만족할 만한 무언가로 만드는 직업이다. 킬러라 불러도 좋지만 주인공은 직업을 ‘구조조정’이라고 부른다.

주인공조차 모르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이 회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겠는 회사. 모든 일은 메니저와 사서함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바로 그 점이 회사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결정권을 주는 듯하지만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다. 회사는 자신들이 필요한 만큼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모든 것에 관여한다. 그들은 마치 물이나 공기, 돈과 같은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는 무서운 존재이다. 도대체 내가 어디서 누굴 위해 일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작가가 주인공 입을 통해 이야기하는 회사는 구조조정을 기획하고 도와주는 회사이다. 구조조정 대상이 부패한 목사, 정치인, 노동조합 간부, 개발지역에 살고 있는 농부이든, 누구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의뢰인 또는 고객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에게 효율적인 구조조정만 해주면 되는 것이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죽음이라는 ‘조정’을 말이다.


변명

처음 죽음의 시나리오를 써나갈 때는 추리소설 작가로 데뷔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세 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야 시나리오와 같은 내용의 신문기사를 확인했다. 그렇게 주인공의 구조조정 컨설턴트는 시작되었다. 자신을 사랑했던 현경에 대한 ‘조정’도 했다. 자신의 나이보다 ‘조정’한 사람의 수가 훌쩍 넘어서기 시작했다. 자신을 합리화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러다 일탈을 한다. 동물의 왕국에서 나오는 바로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전자 구조를 가졌다는 ‘마운틴 고릴라’를 보기 위해 콩고로 향한다. 회사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 콩고에 가면 무언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콩고는 내전으로 인해 거의 폐허가 되어 있다. 물론 ‘마운틴 고릴라’를 보는 것은 실패한다. 그곳은 아직도 내전 중인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 주인공은 세 명의 강도에게 붙잡힌다. 하지만 결국 회사에 의해 구출된다. 그리고 ‘정’이라는 사람에게 콩고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핸드폰을 만드는데 필수 재료인 콜탄의 대부분은 콩고에서 나온다. 휴대폰 붐과 함께 콜탄은 가격이 상승했다. 내전 중이던 콩고의 가장 중요한 광물은 콜탄이 되었고 전선은 광산을 따라 형성되었다. 그렇게 내전을 통해 5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죽었다. 정규군과 반군은 콜탄 광산을 서로 탈환하려 했으며 콜탄을 팔아 무기를 잔뜩 사드리고 또 전쟁은 심화되는 악순환이었다. 우리가 보조금까지 받아가며 멀쩡한 휴대폰을 버리고 새 휴대폰을 사는데 여념이 없을 때 콩고에서 총알은 장전되었다. 철컥! 하지만 휴대폰은 패션아이콘이자 신분의 상징이니 바꿔야지. “어쩔 수 없어요. 세상은 원래 그런 걸요.”

어쩔 수 없다. 아마 히틀러의 친위대도, 80년 5월 광주의 공수부대도, 아니 인류의 첫 살인자도 정말이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 회사에서 벌이는 일이니까. 이 사실을 모르고 사는 당신은 편할 거다. 아무 것도 모르니까. 그저 회사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게 편하니까. 자신의 책임이 아니니까. 그런 거다. 그래서 변명이 필요한거다.

“모든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었다.”(p.278)

임성순 작가는 비열하고도 위선적이고 자신을 합리화 하는 자본주의적 진화에 성공한 새로운 킬러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살을 위장한 타살을 일삼는 이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사회구성원 모두와 자신 스스로에게 던지는 성찰이다.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다보면 옆구리가 따끔거린다. 웃고 있는데 작고 예리한 송곳으로 옆구리를 찔리는 기분이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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